/ 도종환
사람들이 산방에 찾아왔다가
깜짝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벌레입니다.
흙으로 지은 집이라서 굽도리를 따라
불개미가 줄지어 몰려다니고 자벌레도 삽니다.
다리가 가늘고 긴 거미도 구석에 줄을 쳐 놓고
기다리고 아직 저도 이름을 잘 모르는
작은 벌레들이 재재발거리며 기어 다닙니다.
말벌과 뿔나비는 물론이고 날개가 있는 곤충들도
수시로 방을 들락거립니다.
사람들이 벌레나 곤충들을 보고 놀라 소리 지를 때면
그 소리에 벌레들이 더 놀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방은 저 혼자 사는 집이 아니고 여럿이 사는 집입니다.
추녀 밑의 구멍 속에는 딱새들이 둥지를 틀고,
방문 앞에는 벌들이 집을 지었습니다.
섬돌 밑에는 뱀이 들어가 겨울을 지내는데,
뜨락 한 모퉁이 돌아가면 다람쥐 역시
돌 틈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한 가족이 모여 삽니다.
그들도 거기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옛날부터 그곳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그들보다 늦게 산속에 들어와
집 짓고서는 여기가 내 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 사는 집이 낯설고 위험할 텐데 그래도
떠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냥 머물러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흙의 갈라진 틈에 깃들어 살면서 그 작은 몸 어디에
입이 있어서 무언가를 찾아 먹기도 하겠지요.
귀나 코 같은 것이 있어서
제 짝이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하겠지요.
도르르 말린 녹차 이파리만 한 몸으로
서로 사랑을 하고 알을 낳고 키우면서
오순도순 살아갈 그들의 일상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걸 눈치채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왔을 아빠 벌레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생각을 하면 방 안을 바쁘게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습니다.
대신 방 밖에서 살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쓰레받기에 담아 섬돌 밑에 내놓습니다.
그러면 기를 쓰고 다시 기어 들어오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그 짓을 반복하며 그냥저냥
그들과 섞여 삽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착한 존재가 아니라
까다롭고 변덕도 심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알게 되면
짐을 싸고 나가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 도종환 시인의 산방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