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눈 오는 날 만나자.....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같은
흰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는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것은 그 얼마나 축복인가
♬ ...I Love you / Giovanni Marradi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첫눈,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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