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과 詩의 만남
나는 돌 그대는 蘭,
자네와 나 사이에
골짜기가 너무 깊어 만날 수는 없지만
그대의 蘭 향기 비바람이 전해주네.
< 秋史가 石坡에게 보낸 시>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淨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微塵도 가까이 않고 雨露 받아 사느니라.
(嘉藍 李秉岐-난초. 출전:<가람 시조집>(1939))
차가운 난잎은 차라리 먹빛이요
벙긋웃는 난화은 완연한 봄빛이라.
새벽녘 돌부리에선 엷은 안개 스친다.(권상호-난초)
한 손에 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 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蘭草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蘭香의 소리>
고요한 대지
닭울음 들리고
동창은 밝았다.
개울물 소리에 억새풀 소리
산 넘어 흘러오는 薰風에 그윽한 향기
이 곳은 武陵桃源./
목마른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동녘 햇살에 생기를 얻는다./
淸雅心, 자연 순응의 謙虛心
無過慾, 忍耐를 배우며
錢香보다 僞香보다
眞香이 좋더라.
<素空>님께
그 무슨 향기이기 이리도 멀리 들려옵니까?
임께도 그 내음 젖어, 주시는 잔에도 함빡 젖어......
蘭草와 더불어 조촐히 닦으신 정한 자리에
진정 속되어 난 키우기 아예 부끄럽습니다.
<蘭草>
난초는/얌전하게 뽑아 올림 듯 갸름한 잎새가 어여쁘다.
난초는/건들어지게 처진 청수한 잎새가 더 어여쁘다.
난초는/바위틈에서 자랐는지 그윽한 돌냄새가 난다.
난초는/산에서 살던 놈이라 아모래도 산 냄새가 난다.
난초는/<倪雲林(예운림)>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지니었다.
난초는/<陶淵明>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갖추었다.
그러기에/사철 난초를 보고 살고 싶다.
그러기에/사철 난초와 같이 살고 싶다.
신석정. 전북 부안. ‘朝鮮文學’(1937. 2.)과 ‘촛불’(193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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