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산행급수는 얼마쯤 될까요?

당신의 산행급수는 얼마쯤 될까요?     ​산행에도 급수가 있다는군요. 8급에서 9단까지......  8급. 타의입산(他意入山) : 산 보다 그림틀(티비)을 선호하여 휴일이면 리모콘이 유일한 장난감인 바, 회사에서 또는 모임에서 결정된 산행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다. 멀쩡한 하늘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를, 그래서 산행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7급. 증명입산(證明入山) : 산을 좋아해 찾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으러 간다.  물 좋고 경치 좋으면 아무데나 가리지 않고 나 여기 왔노란 듯이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특히, 경관이 좋은 곳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고는 그 사진을 한국의 산은 다 가봤다는 자료로 활용한다.     6급. 섭생입산(攝生入山) : 오로지 '먹으러' 산에 간다. 배낭 가득히 먹거리를 챙기고 계곡에 퍼질러 앉아서 식탐을 즐기는데, 엄청 먹었는데도 음식 절반이 남아 다시 지고 내려오며 "아~ 나는 왜 이리 식성이 없는지 몰라~"하며 탄식한다.     5급. 중도입산(中道入山) : 산행을 하긴 하되 중도에서 하산 하는, 일명 중턱산악회원이다. 제 다리 튼튼하지 못함을 탓하지 아니하고 꼭 뫼만 높다 한다. 산에 와선 뭐 꼭 정상을 올라가야 하나. 올라가면 누가 밀가루 배급이라도 준단 말이냐, 하며 주변 사람들까지 꼬드끼는 특징이 있다.     4급. 화초입산(花草入山) : 내내 집에만 있다가 진달래꽃 피는 춘삼월이나, 만산홍엽으로 불타는 경치 좋은 계절에 산에 간다. 그리고 예쁜 꽃이나 단풍을 꼭 끼고 사진을 찍고선 제 얼굴 못남을 탓하지 않고 꽃이 시들었다느니, 단풍이 칙칙하다느니 하며 배경 탓을 하기도 한다.    3급. 음주입산(飮酒入山) : 산행 후 '하산주'를 먹어야 산행이 끝났다고 주장하며, 산을 열심히 찾는 이유가 성취감 뒤에 따르는 하산주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이 부류는 술의 종류, 알콜의 도수, 값의 고저를 막론하고 그저 양만 많으면 된다는 먹보형이 많다.     2급. 선수입산(選手入山) : 산을 마라톤 코스로 생각하고, 산을 몇 개 넘었다느니, 하루에 얼마나 많이 걸었다느니 하는 것을 자랑하러 산을 찾는다.  먹을 때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해치우고 오로지 걷기에만 주력한다.    1급. 무시입산(無時入山) : 산을 좀 아는 까닭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제사가 있으나 아이가 아프나, 자기가 계획한 산행은 꼭 하는 부류다.  폭풍이 몰아쳐 "오늘 산행 취소지요?" 하고 물으면 "넌 비 온다고 밥 안먹냐?" 하고 되묻는다.     초단. 야간입산(夜間入山) :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밤에라도 산을 오르는 형이다. 산에 가자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산병山病 초기 증세를 보인다. 산정에 오르면 지가 무슨 늑대라고 우~ 우~ 하고 소리를 지르는 해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단. 면벽입산(面壁入山) : 이 부류는 바위타기를 즐겨 한다. 틈도 없는 바위에 온 몸을 비벼 넣으려는 듯, 바위가 무슨 애인이라도 되는 듯 안고 할키고 버팅기고 부비고, 바위를 상대로 온갖 퍼포먼스를 벌인다.    2단. 면빙입산(面氷入山) : 이 부류는 날씨가 추워지기를 학수고대 한다. 얼음도끼와 쇠발톱을 꺼내 놓고 폭포가 얼어 붙기를 축원하다가, 결빙되었다는 소식만 들으면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가 빙벽 등산을 한다.  빙판 길에 사람들이 넘어져 다치더라도 겨울은 추워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3단. 합계입산(合計入山) : 이 부류는 8급부터 시작하여 면벽과 면빙 수도를 끝낸 후, 조갈증이 나서 더 높고 어려운 산이 없나를 모색하는 형이다. 산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느라 평소 안 보던 책을 본다.    4단. 설산입산(雪山入山) : 생즉필사生卽必死요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 알 듯 모를 듯 비장한 출사표를 내고 설산에 도전하는 형이다.  가끔 히말라야 설산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돌아왔다는 소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5단. 자아입산(自我入山) : 드디어 산심山心을 깨닫고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되는 시기다. '사람과 산'의 관계를 알게 되는 입신의 단계에 들어선다.    6단. 회귀입산(回歸入山) : 산의 본질적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있다는 머리 쥐나는 철학哲學을 깨닫고, 다시 우리나라의 낮은 산으로 임한다. '걷는 자 만이 오를 수 있다'는 지극히 쉬운 원리를 어렵게 깨우침으로써, 평소 실실 웃는 하회탈 모습으로 표정도 바뀌는 단계이기도 하다.     7단. 불문입산(不問入山) :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라는 평등 산 사상의 경지에 이른다. 산에 오르는 것을 묻지마~ 라는 선문답으로 유유자적 산을 즐긴다.    8단. 소산입산(小山入山) : 이 부류는 겸허하게 작은 산도 엄청 크고 높게 보는 안목이 있어 작은 산을 즐겨 찾는다.  그러나 힘들어서 높은 산을 못 올라간다는 소리는 결코 안 한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에 비례해 입에는 양기가 올라 남산 산행 같이 쬐끄만 산행이 끝나고 하산주 시간이 되면,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9단. 입산금지(入山禁止) : 살아 생전은 딸 수는 없는 단계다. 조그마한 동산, 아니, 봉분 밑에 깔려 자연과 하나가 되면 입산금지入山禁止다. 그때가 되야 비로소 등산 최고수 9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