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은 먼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루가 17,25). 우리 대부분은 고통을 줄이거나 최소화려고 애씁니다. 우리의 종교조차도 자주 고통을 줄이거나 피하려는 도피처로서 간주됩니다. 신비 신학자 메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빛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어두움에서이다. 그래서 우리가 슬픔에 잠길 때, 이 빛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다.” 고통은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을 재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잃을 때까지, 우리 자신이 가진 것을 참으로 모릅니다. 고통과 잃음은 우리가 해왔던 많은 일들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어쨌든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영혼의 어두임이 우리를 너무 단단하게 조여오는 듯 할 때, 잃음과 함께 오는 깊은 고통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우리는 더 확실하게 보고, 생생하게 마음 속에 그리고, 신비스럽고 깨끗하고 맑은 것들을 경험하기까지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의미 있는 삶과 하찮고 피상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과장된 삶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자연으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며, 우리가 지닌 기억들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내면의 인식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잃음들과 타협이 이루어 질 때,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광과 얻음이 한편이라면 고통과 잃음은 반대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의 길에만 의지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걷는 여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들은 전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는 낮은 없습니다. 전쟁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미움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절망없는 희망은 없습니다. 죽음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우리가 반대편 사이를 움직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자 예수님, 저를 인도하소서. 삶에서 일어나는 폭풍의 바다를 뛰어 넘을 수 있게 하소서. 제 앞에 알려지지 않는 파도들이 출렁이고, 숨어 있는 바위와 믿을 수 없는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구원자, 예수님 지도와 나침반으로 저를 인도하소서.”
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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