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밤편지/김남조

ys형님 2015. 1. 8. 21:22

 








밤편지

   - 김남조



편지를 쓰게 해다오

이날의 할 말을 마치고
늦도록 거르지 않는
독백의 연습도 마친 다음
날마다 한 구절씩
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

밤기도에
이슬 내리는 적멸(寂滅)을
촛불빛에 풀리는
나직이 습한 악곡(樂曲)들을
겨울 침상에 적시게 해다오

새벽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밤들을
가슴 저려 가슴 저려
사랑하게 해다오

세월이 깊을수록
삶의 달갑고 절실함도 더해
젊어선 가슴으로 소리내고
이 시절 골수에서 말하게 되는 걸
고쳐 못 쓸 유언처럼
기록하게 해다오

날마다 사랑함은
날마다 죽는 일임을
이 또한
적어두게 해다오

눈 오는 날엔 눈발에 섞여
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실려
땅 끝까지 돌아서 오는
영혼의 밤외출도
후련히 털어놓게 해다오

어느날 밤은
나의 편지도 끝날이 되겠거니
가장 먼
별 하나의 빛남으로
종지부를 찍게 해다오


언제부터인가 편지 쓰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밤 늦게까지 편지를 쓰고 그것을 우체통에 넣으며 느꼈던 애틋한 기분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 편지를 받을 사람을 생각한다는 일. 그 편지가 가는 동안의 설렘과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다시 마음을 내는 시간을 거쳐 답장이 날아오고 있는 동안의 궁금함과 애틋함. 보내온 편지를 뜯을 때의 달콤한 긴장.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행간까지 가만히 음미하는 때의 기쁨과 슬픔. 김남조의 밤 편지는, 편지 쓰는 행위에 관한 아름다운 탐닉입니다. 골수에 말하게 되는 걸, 고쳐 못쓸 유언처럼 기록하고 싶은 그 마음. 이 시간이 먼 다른 시간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글에 찍을 마지막 종지부는 별 하나의 빛남이라니, 멋지지 않은지요. 우리가 숨을 그치는 날에 찍는 마침표, 별 하나. 그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우린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리니. [시인 이상국]






Tombe La Neige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