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맛집 [김대중 편]
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대통령 안 받겠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죠.”
2005년 5월 10일, 탁승호(59) 대표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대통령님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꿈이 이뤄진 것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결혼 43주년 기념연을 저희 가게에서 하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희 전문인 양곱창이 기름기 없고 고단백이어 김 전 대통령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치의의 권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식가이자 미식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저희 집은 재료의 쫄깃함과 신선도를 위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얼음물을 이용해 손질을 하는 것이죠. 양곱창이나 대창 등 내장은 사람의 체온만으로도 쉽게 변질됩니다. 그래서 얼음물로 손을 차갑게 한 후 최대한 빨리 손질을 하는 것이죠. 이러면 양곱창은 조개관자처럼 쫄깃함이 살아있습니다. 이 맛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양미옥' 의 양곱창은 쫄깃한 육질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느끼함이 없다. 또한 대창구이와 함께 섞어먹는 양곱창은 자칫 퍽퍽할 수 있는 맛에 기름기를 돋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한 달에 서너 번, 그것도 손님이 붐비지 않는 일요일 점심 때에 ‘양미옥’ 을 방문했다고 한다.
“늘 이희호 여사님과 같이 오셨어요. 오시면 양곱창 2인분을 드셨죠. 이 여사님은 물냉면을 좋아하셨습니다.”
“첫 방문 전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다리가 불편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2층을 올라가시기 불편하니 1층 자리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요청하셨죠.” 탁 대표는 곧바로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구매했다. “식사하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니 의자가 좀 불편해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의자를 맞췄죠.”
고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맞춰진 의자는 현재 탁승호 대표의 사무실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귀중한 물건이라 잘 모셔놓고 있지만 저 의자를 보면 때론 서글퍼집니다.” 탁 대표의 사무실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이 많았다. 같이 찍은 사진과 의자 등 하나하나 소중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굉장히 소탈하신 분이셨어요. 식사를 하실 때도 일본인 관광객 손님들이 사진을 부탁하면 같이 찍어주시곤 하셨죠. 음식에 대해서도 특별히 따로 주문하시는 일은 절대 없었어요. 지난 6월 21일 일요일이 마지막 방문이 되고 말았네요.” 품안에서 꺼낸 수첩을 뒤적이던 탁승호 대표가 말했다. “이 수첩에 모든 기록이 있죠. 처음 오신 날부터 마지막까지…. 제가 본래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어요. 같이 방문하신 분, 시간, 메뉴 등 이것저것을 적어 놓습니다.” 20년 전부터 적어온 탁 대표의 수첩들은 그동안 ‘양미옥’ 을 방문했던 손님들의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저희 부모님께서 1924년 출생이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님도 같은 해에 태어나셨죠. 저는 서울 토박이지만, 몇 번 모시다보니 꼭 부모님 같았습니다." "이희호 여사님도 저희 부부를 많이 생각해 주셨어요. 해외순방을 다녀오실 때면 화장품이나 양념 냄새 제거용 비누 같은, 제 아내 선물까지 꼭 챙겨주셨죠. 생신날에 저희 집을 방문하시면 꼭 저희 내외를 헤드 테이블인 맞은편 자리에 앉혀 놓고 "장사는 잘 되는지" 등을 묻곤 하셨습니다." "분점인 코엑스점 개장식 때는 맨 먼저 동양난을 보내주시고, 두 분이 함께 참석해 주셨죠.” 탁 대표는 신정이나 추석 때면 일주일 전쯤, 김 전 대통령에게서 축하난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1992년에 시작해 17년을 이어온 ‘양미옥’. 길다면 긴 세월 내내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부심’ 이었다. 탁 대표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부터 분식가게를 하는 등 일찍이 '맛' 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양 재료는 청정지역에서 방목한 뉴질랜드산을 수입해 쓰고 있는데, 이 부위만큼은 한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경호 인력 교체가 있었어요. 갑자기 경호원들이 와서 주방을 점검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난 자부심으로 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이렇게 검사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대통령님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탁승호 대표의 이런 자부심은 주방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운 얼음물에 재료를 손질하고 껍데기 역시 기계 아닌 손으로 일일이 제거한다. “식당은 기업이에요. 기업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죠. 저희 직원들 대다수가 이 ‘양미옥’ 을 개업할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에요. 가족같이 대하고 기업처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죠. 저희 ‘양미옥’ 역시 많이 성장했습니다. 전국 107개 세무서 중 남대문세무서가 전체 세수 중 8%를 담당하죠. 작년에 남대문세무서가 거둔 세수가 11조예요. 현재 남대문세무서 관할 음식점 중 저희 ‘양미옥’ 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있어요." "일본에도 입소문이 나 일본 관광객 손님이 더 많은 날도 있을 정돕니다. 그래서 일본 진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6년 전 일찌감치 일본에 '양미옥'을 상표등록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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