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새소리야 무슨 수로 그릴꼬.
立石峰(입석봉)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空虛(공허)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影浸綠水衣無濕(영침록수의무습)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공허스님의 시에는 禪味(선미)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詩想(시상)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夢踏靑山脚不苦(몽답청산각불고)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三歎四歎(삼탄사탄)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靑山買得雲空得(청산매득운공득)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白水臨來魚自來(백수임래어자래)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石轉千年方到地(석전천년방도지)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峰高一尺敢摩天(봉고일척감마천)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感興(감흥)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 상상봉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古詩(고시) 한 수를 읊었다.
丈夫會應有知己(장부회응유지기)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世上悠悠安足論(세상유유안족론)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이 시는
옛날 시인 張謂(장위)가 喬林禪師(교림선사)라는
高僧(고승)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行雲流水(행운유수)와 같은 김삿갓의 人生行脚(인생행각)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張謂(장위)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羨君有酒能便醉(선군유주능편취)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羨君無錢能不憂(선군무전능불우)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아래시는 장안사의 空虛스님의 청에의해 지은시이다.
矗矗尖尖怪怪奇(촉촉첨첨괴괴기)
우뚝우뚝 뾰쪽뾰쪽 기묘하고 괴이하니
人仙神佛共堪疑(인선신불공감의)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平生詩爲金剛惜(평생시위금강석)
내 평생 금강 위해 시 짓기를 아꼈건만
及到金剛不敢詩(급도금강불감시)
정작 금강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소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김삿갓
공허스님과 김삿갓의
술 마시기와 글 짖기는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스님은 취중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다시 읊는다.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김삿갓이 이에 화답한다.
山深夜深客愁深(산심야심객수심)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구나.
공허스님이 또 흥얼거린다.
燈前燈後分晝夜(등전등후분주야)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고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山南山北判陰陽(산남산북판음양)
산의 남과 북을 봄으로써 음지와 양지를 헤아린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산을 내려오다가 樵童(초동)을 만났다.
공허스님은 장난기가 동하여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雲從樵兒頭上起(운종초아두상기)
구름은 초동의 머리 위에 피어나고
김삿갓이 대귀를 찾으려는데
마침 냇가에서 아낙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山入漂娥手裏鳴(산입표아수이명)
산은 아낙네의 빨래소리로 울리네.
마치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소년 같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에는
詩情(시정)이 한껏 무르녹아 있었다.
이 후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금강산을 두루 살펴보았다.
楡岾寺(유점사)나 神溪寺(신계사) 같은
사찰들은 물론,
九龍淵(구룡연), 萬物相(만물상) 등의
명소들도 빼지 않고 다 보았다.
보아도보아도 신비스럽기만 한 금강산이었다.
공허스님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진리를 배운다고 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도 진리요,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도 진리이고,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雪岩禪師(설암선사)의 偈頌(게송) 한수를 들려 주는 것이었다.
溪聲自是長廣舌(계성자시장광설)
냇물소리 이것이 바로 설법이거니
八萬眞經俱漏洩(팔만진경구누설)
팔만대장경을 모두 흘려버리네.
可笑西天老釋迦(가소서천노석가)
우습다 서역 땅의 늙은 부처님
徒勞四十九年說(도노사십구년설)
사십 구 년 동안 헛수고 하셨네.
불교의 진리는
팔만대장경 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과 귀를 가지면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우주의 섭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그 超脫(초탈)한 詩想(시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浪客去兮不復還(낭객거혜불부환)ㅡ김삿갓
너무도 오랫동안 신세를 지기가 미안해서
이제 그만 佛影庵(불영암)을 떠날 생각이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