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돌아가고 싶은날들의 풍경

ys형님 2019. 9. 16. 22:38


하나.


당신은 일 년에 몇 통의 편지를 보내는지요?
그리고 자신이 받아 보는 편지는 몇 통쯤 되는지요?
그립고 보고 싶던 사람으로부터 어느 날 날아온
한 장의 편지로 인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듯
어쩔 줄 몰라 하던 날은 없었는지요?
' 이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그대'라고 쓰여진 편지 말입니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저 안부만 물었을 뿐인
편지를 받고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따스한
마음이 거기에 묻어나서일 겁니다.





둘.


돌이켜보면, 쓸쓸하거나 외로울 때
우리는 편지를 많이 쓰게 됩니다.
멀리 뚝 떨어져 있어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즐겁고 기쁜 일을 접했을 때보다
힘겹고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편지'라는
그 희망의 메시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 역시 그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나 홀로 생활했을 때, 그때 나의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편지를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야 당연했고, 특히 울적한 날이면
편지를 쓰느라 온밤을 하얗게 지새기가 일쑤였습니다.
덕분에 답장도 많이 받았습니다.
우체부 아저씨가 내 이름만 적혀 있으면 주소가 틀려도
내게 가져올 정도였으니까요.

내 삶에 따스한 위안을 주는 누구에게.....
내 편지의 첫 구절은 대개 그러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낯간지러운 구절이었지만
그때는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씀으로써 그들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란)것을 깨달았고,

또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 삶이 따스한 불빛처럼
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셋.


세상을 향한 내 유일한 통로였던 편지.
그것이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한 여자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에 입대할 무렵,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한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자꾸만 그녀에게 쏠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밤마다 내 아픈 마음을 달래느라
그녀에게 쓴 편지. 하얗게 밤을 새워 쓰긴 했지만 끝내
부치지도 못할 그 사연들.

깊은 밤,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대에게 건너가지 못할 사연들, 어쩌면 내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고백들이 절망의 높이만큼이나 쌓여 갑니다.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여, 아무리 불러도 지겹지 않은 이름이여,
나는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이 닿는 곳마다 그대는 새벽 안개처럼 피어오르니
나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을 뿐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선명한 그대.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 쪽을
떼어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대에게 닿을지 안 닿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나는 내 마음을 보내느라 피흘립니다.
밤새 그대 이름만 끼적이다 더 이상 편지를 쓸 수 없는
까닭은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그대여, 밉도록 보고픈 사람이여.
이제 그만 들키고 싶습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날마다 상처 투성이가 되는 내 마음을.....






넷.

 

그때 내 마음이 그랬습니다.
비록 그녀의 손에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편지는, 그리고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건 진정
내게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밤마다 편지를 씀으로써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으며,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을 조금씩
성숙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요즘 편지를 쓴 지도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또 귀찮다는 이유로
그 향내 나는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은 지가 한참인 것입니다.

오늘밤은 잠시 전화기를 밀어내고
엽서라도 한 장 써보는 게 어떻습니까.
'내 삶에 따스한 위안을 주는 그대에게'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말입니다.

 

다섯.


작가 체호프를 사랑했던
아뷔로 부인이 기차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기차가 체호프의 집 앞을 지나게 되자
그녀는 불현 듯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가까운 역에 다다르자 부인은 간단한 편지를 써서
심부름꾼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은전 한 닢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받아든 체호프는 편지 사연을 읽으려고
애써 보았으나 심부름꾼의 손대와 땀에 젖어 버려서
겨우 아뷔로란 서명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심부름꾼이 대가로 받았던 은전 한 닢을
내놓으려고 하자 체호프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필요없네. 그녀의 이름만 보아도 충분하니까."


여섯.


편지는 주소를 정확하게 써야만 받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주소를 가르쳐 줄 때 틀리지 않도록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게 마련입니다.
그렇듯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집주소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의 주소는 잊어버리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집주소만 외우고 있을 게 아니라 한번쯤 내가 지금 서 있는
사람의 주소가 정확한가 살펴봐야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엉뚱한 곳에 서 있으므로 해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 을 영영 못 받아 볼 수도 있으니까요.

- 이정하님의 산문집 "돌아가고 싶은날들의 풍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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