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근심은 알고나면 허수아비다

ys형님 2014. 11. 26. 22:22

 

근심은 알고나면 허수아비다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 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이외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